베드로전서 1장
구조
1:1-2 인사말
1:3-12 신자가 받은/받을 구원의 위대함
3-5 산 소망을 주는 구원
6-9 큰 기쁨을 주는 구원
10-12 확실한 구원에 대한 증인들
1:13-25 위대한 구원에 대해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
13-21 하나님에 대해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
22-2:3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
2:4-10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
1절: 저자와 수신자 소개.
2절: 어떻게 독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 서술. 세 개의 전치사구.
a.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카타): 하나님의 택하심 또는 부르심(1:15; 2:9, 21; 3:9; 5:10)의 시작에 초점.
b.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엔): 따로 구별하시는 성령의 사역.
c.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위해’(에이스): 무엇을 가리키나?
순종함(1:2, 14, 22): 믿음의 결단인가? 믿음 후에 따라오는 행위인가?
1:3-12 구원의 위대함
1:3-5 산 소망으로서의 구원
1:6-9 큰 기쁨으로서의 구원
1:10-12 확실한 구원에 대한 증인들
3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Εὐλογητὸς ὁ θεὸς καὶ πατὴρ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Ἰησοῦ Χριστου): 동일한 어휘로 시작(고후 1:3; 엡 1:3)
이미 초대교회에서 폭넓게 사용됨
하나님께서 찬송받으실 만한 이유 제시. 역으로 신자의 편에서는 감사해야 할 이유.
첫째, 하나님을 묘사하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 하나님은 긍휼을 가지고 행하심 (2:10).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다.
- 하나님은 신자들을 새로 태어나게 하심.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강조. - 신자들은 산 소망이 있다.
중생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함.
소망이 무엇인가? 막연하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확신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소망을 두 가지로 정의함.
1. 유업(inheritance):
여기서 사용된 세 개의 형용사(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는 모두 영원성을 강조함.
3,4,5절에서 ‘산 소망’(3), ‘유업’(4), ‘구원’(5)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킴. 서로 다른 메타포를 사용함.
2. 보호하심.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원문은 현재형. 지금도 너희는 보호하심을 받고 있다는 의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인가? 우리의 믿음인가?
우리의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인가?
6-7절: ‘그러므로’: 고난/핍박 중에도 이 구원의 산 소망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
베드로는 독자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금과 은에 들어있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과 비교함. 금의 불순물들이 강렬한 열을 통해 제거되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금보다도 더 귀한 것으로 여기심.
베드로가 여기서 사용하는 ‘믿음’(피스트스)이란 단어는 주로 바울서신에서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최초 결단에 강조점이 있는 것과는 달리, 마지막까지 인내해야 하는 부분을 강조함. 이 인내하는 믿음으로 구원을 완성하는데 초점이 있음.
7절: ‘너희 믿음의 확실함’(τὸ δοκίμιον ὑμῶν τῆς πίστεως)이란 표현은 야고보서 1:3의 ‘너희 믿음의 시련’(τὸ δοκίμιον ὑμῶν τῆς πίστεως)이란 표현과 완벽하게 동일함. 여기서 도키미온은 테스트, 연단이란 의미로서 이를 통과한 믿음만이 진정성 있는 확실한 믿음(tested genuineness of your faith).
예수의 재림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 우리의 공로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된 믿음’에 대한 자연스러운 결과물. 이것이 시련의 목적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8-9절: 여기서는 장래의 구원과 장래의 칭찬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베드로처럼 예수를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를 사랑한다. 여기에서는 믿는다는 표현에 들어있는 예수에 대한 헌신의 의미를 넘어서 사랑의 관계가 나타난다. 그리스도가 신자들에게 먼저 몸소 실천해 보이신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사랑의 감정, 마음이 부각된다.
5절에서는 구원이 미래적이었다면, 여기서는 이미 현재에 받아 누리는 구원을 말한다.
10-12절: 베드로는 왜 여기서 이 이슈를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이 구원이 그의 독자들을 위한 것임을 확증시켜주기 위함이었을까?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나 아니면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나? 베드로의 관점에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너희에게 임할 은혜’는 너희에게 주어진 구원을 의미한다. 그 구원을 예언하던 구약의 선지자들도 그들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그들에게 구원의 핵심(그리스도가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계시했기 때문에 그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면서 이 말씀이 누구를 또는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를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폈고 이를 통해 그 내용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고 바로 너희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그들도 알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성령이 그 구원의 복음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자에게도 동일하게 깨닫게 되어서 너희들에게 전한 것이다. 베드로는 이 구원의 위대함과 신비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천사들도 알기를 원했지만 모르는 것이다(막 13:32; 롬 16:25; 고전 2:6-9). 그런데 이제 그 예언의 성취를 보고 경험하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강조(마 13:16-17 비교).
마 13:16-17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12절: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은 여기서 소아시아에서 베드로의 독자들에게 선포된 복음과 동일시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 구약은 단순히 원 독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시사. 특정 본문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기록되었다는 것. 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교회의 출현/설립
- 계시의 연속성을 말해준다. 구약은 단순히 유대교의 성경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경/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것.
1:13-25 위대한 구원에 대한 신자가 취해야 할 태도
여기서부터 서신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뀜. 직설법에서 명령법으로 바뀜.
2-12절의 내용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함으로써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에 관한 진술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명령형이 주를 이룬다.
복음을 먼저 제시하고 이에 따르는 우리 믿는 자들의 response가 나온다. 전자 없이는 후자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뒤에 가서 독자들이 당하는 핍박에 대한 말씀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일반적인 가르침이 나온다.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위대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합당한 삶을 강조함.
하나님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 (1:13-21)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 (1:22-2:3)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 (2:4-10)
13절: 세 가지 명령이 나옴.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는 말은 그 은혜/구원을 바라보고 인내하라는 것. 1:3에서 그들에게 산 소망이 주어졌다면 그들은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소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우리 앞에 주어진 목표에서 나온 목표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들이 가지는 소망의 대상은 하나님의 은혜(‘너희에게 가져올 은혜, 13절)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재림 때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주실 것에 대해 집중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재 이 세상에서도 은혜를 주시지만 여기서 베드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은혜는 마지막 때/종말에 드러나게 될 은혜를 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는 데 그것을 베드로는 두 가지로 표현한다. 첫째,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둘째, 근신, self-control,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14-16절: 순종과 거룩
18절과 4:3을 보면 독자들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준다.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런 표현들은 유대인들에게 보다는 이방인들에게 해당되는 표현들임.
‘순종하는 자식처럼’은 ‘순종의 자식으로서’(호스 테크나 휘파코이스). 그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무지해서 세상 사람들이 살듯이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순종의 자식,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말함.
‘거룩’이란 단어는 하나님 자신의 속성을 나타낸다. 이 단어 속에는 순전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악을 미워하는 것이 모두 들어있다.
거룩한 삶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갖는 모든 관계(15절의 ‘모든 행실’)에 영향을 미친다. 이 서신서를 보면 베드로는 이 후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2:12; 3:1, 2, 16)
15절: ‘거룩한 자들’은 구별된 자들이라는 의미. 거룩하신 분이 너희를 부른 이유는 그가 거룩한 것처럼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는 의미. 부르심과 구원의 목적이 단순히 구원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
16절은 레 19:2 LXX를 인용.
17-21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
15절의 ‘행실’(아나스트로페)와 17절의 ‘지내라’(행하라, 아나스트레포 동사).
‘두려움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라는 의미임.
베드로는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분은 동시에 우리를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하실 심판주/재판관이심을 말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미 용서받았기 때문에 이젠 우리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베드로는 경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진정한 이유를 18-19절에서 제시한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얻은 구원.
19절: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신 바 되었다’ 어떤 사건을 가리키나?
22절: 너희가 거짓 없는 형제 사랑을 위해(εἰς φιλαδελφίαν ἀνυπόκριτον) 진리를 순종함으로(ἐν τῇ ὑπακοῇ τῆς ἀληθείας)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정결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4-25절에서 베드로는 이사야 40:6-8을 인용하는데 무엇을 말하기 위함인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드로전서 3장 요약 (0) | 2021.04.09 |
---|---|
베드로전서 2장 요약 (0) | 2021.04.09 |
로마서 15장 연약한 자를 배려함 (0) | 2021.03.16 |
로마서 14장 로마 교회를 향한 권면 (0) | 2021.03.16 |
로마서 13장 세상 통치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0) | 2021.03.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