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선례 - 아브라함(4:1-25)
<1절> 주제 도입 육체로, 육신으로, 여기서 육신은 뒤이어 진행될, 행위들, 할례, 율법 이 모든 개념을 포괄해서 그 주제를 시작하기 전 도입적 의미로 그것을, 육신, 육체로 도입한다. <3절> 창 15:6은 믿는다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곳이다. 또한 믿음과 의가 연결되어 나타나는 첫 번째 경우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도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같은 계열의 믿음이라고 밝힌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 약속이 그 자손과 관련된 것이고, 그 자손이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브라함 사건 자체가 그리스도 사건을 내다보는 것이고, 아브라함이 그것을 명쾌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약속에 내재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 하나님께서는 그 아브라함의 믿음에 근거해서, 그의 의를 인정하셨다.
<11 상절> ‘그가 아직 할례 받지 않았을 때 가졌던 믿음의 의(義)의 인장(seal)으로서 할례의 표를 받았다.’ 할례는 믿음의 의를 인친 사건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할례는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와 무관하지 않다. 그 칭의를 인치는 인장으로서의 기능, 표로서의 기능을 한다. 다만 할례는 아브라함의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그 칭의를 확증해 주는 인장 기능을 하는 표일 뿐이다.
<11하-12절> 그가 할례 받지 않은 모든 이방인 신자들의 조상이 되는 것은 그가 할례 받지 않은 상태에서 믿고 의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할례 받은 모든 유대인 신자들의 조상이 되는 이유는 그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표로써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그 믿음의 표로 할례를 받으면, 그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것이다.
<13절> 바울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이 세상의 후사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얻는 것이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의 의에 기초함을 밝힌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주어진 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 율법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4절> ‘율법에 속한 자’, ‘율법으로부터 온 자’ 유대인이라고 단순히 이해하기보다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을 상속하기 위해서 유대인으로의 지위 그 이상 아무것도 갖지 못한 즉,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고, 율법에만 의지하는 유대인들을 율법에 속한 자로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율법으로부터 온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무효화되었다.’ 만일 누구라도 율법만을 소유하고 상속자가 될 수 있다면 굳이 믿음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만을 소유한 자가 그 율법의 요구를 모두 행함으로써 의롭게 되어서 상속자가 되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15절> ‘율법은 진노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유대교 신학에서 율법에는 매우 긍정적 기능이 부여된다. 심지어는 구원적 기능이 부여되기도 한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이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단언한다. 바울은 ‘범법’(para, basij)을 ‘죄’와 구분하여 사용한다. ‘범법’은 구체적인 규범을 어긴 죄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범법’은 죄이지만, 모든 죄가 ‘범법’은 아니다. 바울은 모든 죄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임을 1:18에서 선언했고 쭉 밝혔다. 다만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바는, 모세 율법은 그 범법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확실히 가져오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처럼 율법은 유대인들 그들의 정죄 선언으로부터 구출해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그들에 대한 정죄 선언을 확고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것일 뿐이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6장 성화로 특징지어지는 삶(1) (0) | 2021.03.12 |
---|---|
로마서 5장, 설교문 습작 (0) | 2021.03.11 |
로마서 3장 21-26 예수의 죽음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의 (0) | 2021.03.08 |
로마서2장 12-16 율법이 안전장치가 될 수 없다 (0) | 2021.03.08 |
로마서2장 1-11 하나님의 공정성 (0) | 2021.03.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