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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로마서 8장 - 하나님의 영의 내주로 특징지어지는 삶

by 소북소북 2021. 3. 14.

로마서 8장 - 하나님의 영의 내주로 특징지어지는 삶

생명의 영의 내주 하심(8:1-11)

 

8장의 첫 번째 단락 1-11절은 7:25보다는 7:6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영의 새로움 안에서 섬기도록. 3절은 2절의 ‘그리스도 안에’(evn Cristw/| VIhsou/')를 보다 명백히 설명한다. 그 해방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다고 했는데. 1절에서의 자유, 2절에서의 진실된 결과적 해방의 기초가 무엇이냐를 3절에서 분명하게 보여준다.

 

4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밝혀 준다. 그 목적이란 신자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법을 진정으로 세우는 것이다. 5-8절은 현존하는 절대적인 두 대립 세력을 강하게 대조시킨다. 그 두 개의 대립세력은, ① 한편으로, 하나님의 영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 ② 다른 한편으로, 육신과 그에 속한 모든 것.

 


9절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신자들 가운데 내주 하시도록 주셨다는 확고한 사실을 강조해 준다. 끝으로 10 ,11절은 2절의 내용,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하나님의 영의 내주 하심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이 무엇인가? 그것은 필연적으로 부활과 영생의 약속을 몸소 체득하게 된다는 진리가 바로 10,11절에서 소개된다.

 

양자의 영(8:12-17)

1-11절의 중심 사상이 ‘생명’이라면, 12-17절의 중심 사상은 ‘하나님의 아들’(양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의 공통 개념이 무엇인가? 성령은 이들 두 단락을 연결하는 공통 개념이다. 성령은 생명도, 양자의 권리도 우리에게 제공하는 분이시다. 둘 사이의 논점은 매우 유사하다.

 

본 단락은 바울과 그의 독자들에게 공히 부여된 임무를 언급함으로써 시작된다. 먼저 12절은 이 임무의 소극적 측면을 밝힌다. 육신을 따라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13절은 독자들에 대한 육신을 따라 살 경우의 결과, 경고 및 약속을 밝힌다. 뒤이어 만일 그들이 육신을 죽이면 생명이 약속되어있다. 죽음과 생명, 죽음은 경고의 요소로, 생명은 약속의 요소로 부각된다.

 

14절은 13절 하의 내용을 보다 명백히 규정해 준다. 13절하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반복하면서, 3인칭 복수로 화법이 바뀐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 진리를 좀 더 보편적 진리로 소개한다. 신자에게 약속된 생명은 단순히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삶의 중요성을 부각한다.

 

15절에서 바울은 1-11절의 내용을 재차 확인함과 동시에, 성령을 받은 결과의 그 새로운 측면을 밝혀 준다. 그로 말미암아, 곧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 16절은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행위의 근거를 제시해 준다. 그 근거는 성령 자신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시켜주는 데 있다. 그러고 보니 바울은 우리가 기도에서 흔히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것 자체가 성령의 확신 속에서 부를 수 있는 호칭임을 확인해준다.

 

17절은 양자의 영의 주제에 대한 결론 및 다음 단락의 주제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관한 논의의 도입 역할을 겸하고 있다.

 

 

첫 열매로서의 성령 - 영광에 대한 소망의 은사(8:18-30)

소망과 관련된 내용. 앞 단락의 결론인 17절에서 도입된 ‘그리스도인이 누리게 될 영광의 소망’ 주제는 본 단락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하나님의 영의 내주 하심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은 소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이다. 18절은 17절에 나오는 고난과 영광의 주제를 부연 설명하는 기능을 하고, 이러한 연관성은 18절 시작에 가르(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사되고 있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확신을 확고하게 표현한다. 물론 고난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며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탄식한다. 하지만 그들이 당하는 고난은 이 탄식과 같은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고, 그리고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으로 나아가는 과정 상 필수적인 것이다.


이 영광은 ‘이미’의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18절 처음 시작할 때는 ‘아직’의 측면, 소망의 측면을 이야기했는데, 끝날 때는 그것을 우리가 이미 누리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이미’와 ‘아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것이 고난이다. 그래서 이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보증해주는 기능을 한다.

 

18절 이후에 나타나는 현재의 고난과 장차 누리게 될 영광,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서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현상들을 만나게 되는가? 19-30절은 피조 세계와 그리스도인들이 모두가 미래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갈망하며 탄식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 갈망과 탄식이 공존하는 삶 살아감을 보여준다. 그래서 탄식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것이지만, 그 탄식은 절망의 탄식이 아니라 소망의 탄식이라는 것이다. 이 갈망이 세 종류의 탄식으로 소개된다. 첫째는 피조물의 탄식(19-22절),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탄식(23-25절),

 

 

 

바울은 18-30절 전체의 논의를 17절에서 이미 언급한 ‘영광’ 주제로 마무리한다. 바울은 이 서신을 시작하는 처음 단계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참조. 1:21) 그런데 이제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화롭게 한다는 언급을 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한 당신의 궁극적 계획을 이루신다.

 

우리에게 영광을 누리게 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영광스럽게 된 인간은 가장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영원토록 영화롭게 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됨으로써 그 영광을 통해서 하나님께 참된 영광의 경배를 돌리게 된다. 이것이 구원의 최종적 모습이다.

 

결론 -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믿음의 승리(8:31-39)

본 단락은 8장의 결론이자, 5-8장(살리라 주제)의 논의의 결론이며, 1:18-8:30의 모든 논의의 결론으로 본다. 31-39졀은 매우 주의 깊게 구성된 수사학적 표현으로 이루어졌고, 그 주제는 모든 악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승리, 최종적 승리에 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너무도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끈에 의해 확고히 묶여 있기 때문이다. 영적 전쟁에 있어서 초자연적인, 자연적 악에, 모두가 우리를 공격하는데, 이런 강력한 권세들이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공격해도,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모든 대적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의 보호하심을 받으며 계속해서 완성의 때까지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 마지막 단락의 주제이다. 마지막 단락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31-34절: 처음 칭의 경험에서 내려진 하나님의 판결이 미래 심판에서 신자들의 구원을 확실하게 보장해 줄 근거가 된다. 확실성으로서의 긴장 관계.


2) 35-39절: 하나님의 사랑이 고난과 위협과 핍박이 많은 현세대 속에서도 신자들을 든든히 지켜주실 수 있다면, 미래 구원은 확실하게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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