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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로마서 15장 연약한 자를 배려함

by 소북소북 2021. 3. 16.

2021.03.16 - [묵상] - 로마서 14장 로마 교회를 향한 권면

 

로마서 14장 로마 교회를 향한 권면

로마교회의 특정 문제들 해결을 위한 권면(14:1-15:13) 14:1-15:13까지는 전체가 14:1과 15:7의 공통된 명령, 즉 동료 신자들을 ‘받으라’라는 명령으로 전체 단원을 감싼다. 특정 문제와 관련된 문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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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15:1-6)

 

바울은 앞 단락의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의 관계 주제를 이어받아, 로마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하나가 되어야 하는 보다 더 큰 목표를 제시한다. 그 목표는 강한 자가 자기 스스로를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자를 먼저 배려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다.

 

<1절> hmei/j oi dunato,, ‘강한 우리는’

바울은 자기 자신을 강한 자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강한 자들의 특징은, 특정 음식을 먹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허용되었다는 사실, 특정 날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더 요구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자들, 그래서 그 자유를 누리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강한 자들은 자신들의 강함을 이 문제들에 있어서 ‘무력한 자들의 연약함’을 감당하는 데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들의 연약함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강한 자들은 연약한 자들이 안고 있는 제약들을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존중하고 수용하는 배려의 자세를 뜻한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권면한다.

 

사랑은 단지 연약한 자들을 참아주는 정도를 요구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것이 무엇이냐?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그래서 연약한 자들을 진정한 형제와 자매로 동등하게 대해 주는 것. 그래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

 

 

<2절> e [kastoj h`mw/n tw/| plhsi, on avreske, tw, ‘우리 각자가 이웃을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삶의 원리와는 너무나 구분되는 원리인데,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연약한 자들의 선을 위하여, 그래서 그들을 세우도록 함이다. 여기서 바울은 연약한 자를 ‘이웃’이라고 표현한다. 참조. 14:15

 

eivj to. avgaqo.n pro.j oivkodomh,n, ‘선을 위하여, 그래서 [그를] 세우도록 [하여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목적은, 연약한 자의 선을 위한 것이다(참조. 14:15, 20). 곧 그의 영적 유익을 위함이다. 연약한 자의 선은 그가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세워지는 것이다(14:19).

 

 

<3절>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모본: 바울은 자신의 권면의 타당성을 그리스도의 모본을 통해 확증한다. 강한 강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위해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우리 중에 강한 자가 있다면 누가 가장 강하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러나 그는 당신의 기쁨을 위해 일하지 않으셨다. 여기서 바울은 시 69:9 하반절을 그리스도 입술에 올려놓는다.

 

 

‘주님(=당신)을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들이 나에게 미쳤습니다.’

시 69:9하 인용 여기서 당신은 하나님, 나는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는 비방을 당하지 않으셔도 되는 강한 자이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기쁘게 하시기 위해, 스스로 비방을 당하기까지 하셨다. 그 사랑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본다. 그렇다면 강한 우리가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우리의 자유나 날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자들을 세우기 위해서 그들의 연약함을 배려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5-6절> 로마 교회의 상황에서 하나 됨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하나 됨, 강한 자와 연약한 자의 하나 됨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의 하나 됨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교회의 최고의 본분이다.

 

그런데 분리되는 모습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격은, 교회가 진정한 모습으로 하나 될 때이다. 그 모든 담들이 허물어져야 한다. 교회는 강한 자가 힘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배려하고 약한 자는 강한 자의 배려를 통해 세워져 가는, 공동체여야 한다. 그 결과 하나가 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서로 받으라’(15:7-13)

모든 삶의 교훈 단원의 마지막이다.


<7절> 이 단락의 요점이다. Dio. proslamba,nesqe avllh, louj, ‘그러므로 너희는 서로를 받아라.’ 처음 시작할 때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모든 신자들이 서로서로 받으라고 한다. 바울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 관련 권면을 유대인과 이방인 권면으로 마무리한다.

 

강한 자와 연약한 자가 어떤 사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그렇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바울은 결론적 권면에서 강한 자와 연약한 자 권면뿐만 아니라 1장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서신서 전체를 통해서 부각되어 왔던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동등하고 일체적 관계를 최종적으로 부각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강한 자와 연약한 자 관련 모든 교훈의 귀결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교훈은 바울의 교훈의 정점을 보여준다. 최종적으로 내가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받는다’(proslamba, nomai):단지 참아준다, 공식적으로 인정해준다는 의미에 머무는 것은 아니다. 바울이 여기서 의미하는 바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과 관심으로 대하라는 권면이다.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리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와 좀 성향이 다르고, 수준이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동일한 관심,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받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신 것처럼, 서로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받으셨기’ 때문이다(참조. 14:3).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제자 공동체의 특징이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는 바로 앞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심과도 연결할 수 있지만, 그 앞의 서로 받아라와 연관될 수 있다.

 

 

<8-9 상절> 상당히 교리적 내용이다. 이 교리적 내용은 9 하반절부터 12절의 연속된 네 개의 인용구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이 교리적 선언은 로마서 핵심 주제를 요약하고 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심으로써, 아브라함 언약의 약속을 성취하신다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서로 받아들여야 하는 교리적 기반을 더욱더 곤곤히 해 준다. 교회 안에 처음부터 자리 잡고 있는 깊은 장벽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약속을 먼저 성취하셨고, 또한 이방인도 포함시키셨다. 그래서 그 장벽을 허무셨다고 선언한다.

 

Cristo.n dia, konon gegenh/sqai peritomh/ju`pe.r avlhqei, aj qeou/,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할례의 종이 되셨다.’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종이 되셨다’: 그분께서 유대인들을 위해서 섬기셨다, 할례자들의 섬기는 자가 되셨다. 뿐만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율법 아래 태어나셨다. 할례도 받으셨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의 목표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구원, 그들을 위하여.

 

그런데 예수님은 이 정도로 유대인들을 섬기셨을 뿐만 아니라, 먼저 우리가 여기서 볼 것은, 할례의 종이 되셨다고 했을 때, 되셨다가 완료형 부정사(부정 과거가 아니라)다. 그것은 그분의 사역이 지금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지금도 효력을 발생시키고 있다. 참조. 갈 4:4-5; 마 15:24

 

‘되셨다’(gegenh/sqai):
이방인들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유대인과 이방인. 그래서 바울은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네 개의 인용구를 인용한다. 이 네 인용구들은 모두 다 이방인들을 포함하고 있다. 처음 세 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9하-12절> kaqw.j ge, graptai, ‘기록된 것과 같다.’

바울은 그의 통상적인 도입 구와 더불어, 일련의 인용구들을 소개한다. 모든 인용구들은 ‘이방인들’을 포함하며, 처음 세 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첫째 인용(9 하절): 시 18:49 또는 삼하 22:50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 다윗은, 이방 나라들을 정복함으로써, 이방인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 메시아적 통치를 시행하고 계시고, 따라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고 계신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인용(10절): 신 32:43 본 인용구 역시 다른 나라를 정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런데 첫째 인용보다 진전이 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도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미 성취되었다.

 

셋째 인용(11절): 시 117:1 이 인용구 역시도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인용구 다음 구 117:2는 하나님의 진리와 자비를 그 찬양의 이유로 제시한다. 이러한 내용은 본 문맥에 잘 어울린다. 이것이 로마서 전체의 주제이기도 하다.

 

넷째 인용(12절): 사 11:10 이방인들이 이처럼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에 동참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임을 선언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소망이 된다.

 

 

<13절> 바울은 강한 자와 연약한 자 교훈을 기도로 마무리하고 있다. 바울의 기도는 앞의 권면에서 부각되어 왔던 주요 개념들을 반영한다.


① 소망(15:6, 7-12)
② 기쁨과 평화(14:17)
③ 믿음(14:1-2, 22)


이 모든 것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주어진다고 결론을 내린다. 성령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바울은 이처럼 권면의 핵심을 하나님께 간구함으로써 모든 권면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된 권면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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