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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로마서2장 1-11 하나님의 공정성

by 소북소북 2021. 3. 4.

하나님의 공정성 (2:1-11)

본 단락과 관련하여 논의의 주된 초점은 6, 7, 10절에서 바울이 ‘행위 구원’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는 믿음에 기초해서, 혹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그 누구도 행위에 근거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여기에서는 마지막 심판이 인간의 공과에 따라 시행될 것이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선행에 의해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선행에 의한 하나님의 인정, 용납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가정법적 이야기로 7,10절을 이해하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의 관점을 접어 두고 유대인들의 전제를 일단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재 그들의 모습은 2:3, 4절이 그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분명한 모습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자비를 도무지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음을 분명히 선언했다. 그들의 그러한 기준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바울이 논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6절의 ‘행함’이라는 말로 ‘믿음’ 혹은 ‘믿음의 결여’를 의미하고 있으며, 7, 10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믿음은 그리스도인에게, ‘믿음 없음’은 비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된다고 보고, 7절의 선한 행동, 10절의 선, 이 표현들은 믿음 자체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7, 10절에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기는 하지만,(일반 유대인이 아니라) ‘선한 행동’과 ‘선’은 그들의 믿음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표현으로서의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것인데, 선한 행동과 선은 그들의 믿음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표현으로서의 행동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행위는 행위인데, 그 행위가 율법을 스스로 지키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결과로서의 행위라는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 가운데 존재하는, 하나님께만 알려져 있는 모습의 신비한 믿음의 방법을 인지하고 있으며, 7, 10절에서 바로 그 방법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시대에 가능한, 열려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신실한 유대인들과 도덕적 이방인들, 그들이 이 대상에 속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선교학적 관점)

 

아마도 바울은 믿음의 결과로서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3:21절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논점을 전개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 시점에 이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완전히 진노의 대상이지만, 그 가운데서 믿음에 의한 행위를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믿음 외에 율법에 의해서는 선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 단지 심판의 기준에 적합한 선행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그 믿음은 그 마땅한 결과로 선한 행위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1-5절

로마서에서 ‘너’ 라고 얘기 했을 때, 수신자들에게 연관될 때는, 두 가지 대상이 다 활용된다. 첫째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이방인에게. 2장에서는 유대인이 너의 대상이지만 9장 이하로는 ‘너’가 이방인이다. 문맥에 따라 ‘너’는 그 지칭 대상이 달라지고 바울은 이것에 있어 매우 자유로웠다.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면 결국 모든 사람이 회개해야 할 필요성에 놓이게 된다.

 

6-11절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느냐, 모르느냐, 율법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행했느냐, 향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6절에서는 행동이 핵심 단어로 제시된다.

 

7-10절에서는 주된 강조가 부정적 측면, 즉 유대인의 자기만족의 경향에 대한 경고에 초점이 맞춰 있음이 분명하다. 외모의 문제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외적 조건들로 하나님이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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